중국의 궁궐: 자금성(紫禁城)

한중문화: 중국

출처: https://blog.naver.com/wikysk/140054448684

자금성(紫禁城)은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황가궁전으로 고궁(故宮)이라고도 불립니다.
현재 베이징시 중추선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자금성은 3대 궁전, 즉 태화전(太和殿)과 중화전(中和殿),
그리고 보화전(保和殿)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72만㎡의
부지면적을 차지하고 건축물의 면적은 15만㎡에 달합니다.

또한 자금성은 9000여 칸의 방과
70여 개의 궁전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는 세계에서 현존하는 고대 목조 건축물 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지요.

자금성은 세계 5대 궁전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베이징 자금성, 프랑스 베르사유의 궁전,
영국의 버킹엄 궁전, 미국의 백악관, 러시아의 모스크바 그렘린).

자금성은 명나라 제 3대 황제인 명성조(明成祖)의
지휘 아래 만들어졌으며 1406년 공사를 시작하여
15년의 시간을 걸쳐 1420년에 완성이 됩니다.

자금성은 난징(남경, 南京)의 황궁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건축가 괴상(蒯祥)의 설계로 만들어졌습니다.

자금성은 <주례·고공기(周禮·考工記)>중
“전조후시, 좌조우사(前朝後市,左祖右社)”의 제도(帝都)
건설 원칙을 철저히 따라 건설되었으며
기능적으로 봉건사회의 계급제도에 부합합니다.

이와 동시에 좌우균형과 형체적
변화의 예술적 효과까지 나타내지요.

자금성의 건설은 명성조 주체(朱棣)의 명령에 의해
중국 전국 각지의 진귀한 목재와 석재를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준비하는데만 10년의 시간이 걸려 1417년에서야
정식적인 공사가 시작됩니다.

자금성의 건축은 웅위롭고 장대하며 정원이 넓고 시원시원하여
황제의 위엄과 제국 정권의 권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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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의 건축은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으로 나뉩니다.
외조의 중심은 태화전과 중화전, 그리고 보화전입니다.
이들을 통틀어 ‘3대전(殿)’이라 부르죠.

외조는 주로 나라의 큰 행사를 진행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이들 중 태화전이 가로 60.1m, 세로 33.33m, 그리고 35.05m의
높이로 가장 크고 가장 화려한 용모를 자랑합니다.

태화전은 주로 황제의 즉위식과 가례, 책봉, 그리고 출정 등
성대한 의식을 거행하는 장소였습니다.

태화전의 뒤에는 황제가 큰 행사를 치루기 전 휴식을 취하며
알현을 받는 장소인 중화전이 있으며, 가장 북쪽에는 황제가
연회를 베풀고 과거시험 중 전시(殿試, 과거 제도 중 최고의
시험으로, 궁전의 대전(大殿)에서 거행하며 황제가 친히 주지함)
를 진행하던 곳, 보화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정은 황제와 황후의 거처로 사용도었던 건청궁(乾清宮)과
교태전(交泰殿), 그리고 곤녕궁(坤寧宮)을 중심으로 하며
이들을 ‘후삼궁(後三宮)’이라 일컫습니다.

건청궁은 황제의 침궁(寢宮)으로 사용되었으며
황제가 일반 정사를 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건청궁의 후방에 위치한 교태전은 황제와 황후,
그리고 비(妃)들이 거주하던 곳이며 가장 후방에 위치해 있는
건녕궁은 명나라 황후의 침궁, 그리고 청나라 황실이
주로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자금성 궁전은 남북향의 중추선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3대전과 후삼궁, 그리고 어화원(御花園)은 모두 이 중추선에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좌우의 대칭을 이룹니다.

이 중추선은 자금성의 내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베이징 시 전체를 관통합니다.

 자금성은 198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유네스코로부터 “자금성은 중국의 다섯 세기를 거친 최고 권력의
중심이며 수많은 가구와 공예품을 수용한 9000개의 방으로
구성된 고대한 건축군이다. 이는 명청(明淸)시대 중국문명의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역사적 증거이다.”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자금성은 동방 궁전문화의 대표이며
또한 당시 주류 문화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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